▲ 이재명 논설위원

우리말 봄은 ‘싹’이 돋아 나오는 것을 ‘본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한자 ‘春(춘)’은 초목(艸, 풀초)이 햇볕(日)을 받아 자라난다는 뜻이다. 이맘 때 따사로운 햇볕이 땅을 내리 쬐면 흙속에서 꿈틀거리면서 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새싹이다. 수북했던 낙엽더미 아래서 어느새 고개를 내미는 새싹을 보면 비로소 ‘봄’을 본다.

장안의 대로에 보슬비 촉촉이 적시니(天街小雨潤如)/ 멀리서 보이던 풀빛 가까이선 안 보이네(草色遙看近却無)/ 지금이 일 년의 봄 중에 가장 좋은 시절(最是一年春好處)/ 버들빛이 도성에 가득 찰 때보다 훨씬 낫구나(絶勝煙柳滿皇都)… ‘초춘소우’(初春小雨, 한유)

보슬비 내리는 이른 봄의 서정을 표현한 한유(韓愈)의 ‘초춘소우’는 우리나라 남쪽의 2월말 풍경을 그대로 옮겨놨다. 보슬비 내린 언덕에 언뜻언뜻 풀빛이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 가 보면 풀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다가 오지 않은 봄은 우리의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보는 것. 한유는 벌써 보슬비 맞은 새싹을 감상하고 있다. 피부와 맞닿은 공기 속으로, 촉촉해진 나무들의 수피 속으로, 겨우내 체온을 간직해온 풀뿌리 속으로 봄은 두근두근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 광대나물

광대나물, 냉이, 큰개불알풀, 쇠별꽃…. 봄처럼, 새싹처럼, 아기처럼 발 밑에서 올망졸망 피어난 꽃들은 작지만 계절과 우주를 다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다.

아기들의 앙증맞은 손 같은 이파리에 광대들이 쓰는 고깔모자 모양의 꽃을 이고 있는 광대나물. 꽃말이 ‘그리운 봄’ ‘봄맞이’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이맘때가 되면 광대나물꽃은 양지쪽 골목길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처럼 일제히 피어난다. 일명 ‘코딱지 나물’로도 불리는 광대나물도 우스꽝스럽지만, 큰개불알꽃도 은근히 미소짓게 한다. 봄날 양지바른 땅이 햇살을 가득 받아 힘껏 밀어올리는 큰개불알꽃(봄까치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봄나물의 대명사 냉이의 꽃말은 ‘봄색시’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전문(나태주)

‘멀리서 보인 풀빛 가까이선 안 보이네’라고 했던 한유의 눈에 비로소 키작은 작은 꽃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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