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바위고개 핀꽃 진달래꽃은/ 우리님이 즐겨즐겨 꺽어주던 꽃/ 님은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바위고개’(작곡 이흥렬)

1932년 작곡돼 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노래. 비 갠 아침 등억마을 산성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물을 머금은 진달래꽃 주위에 복주머니같은 빨간 꽃봉오리들이 우후죽순으로 입술을 내밀고 있다. 산성산은 임진왜란 때 성곽이 둘러쳐진 요새. 이 고개를 넘으면 언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바위도 많고 돌도 많고 그 돌틈 사이에 진달래나무도 많다. 이흥렬 선생은 바위고개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등억마을 산성산 바위고개라고.

산성산 성터에서 바라보면 등억마을 논과 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히 젖은 대지 위로 아침 안개가 뽀얗게 깔렸다. 산성산은 일명 ‘과부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임진왜란 때 남정네들은 ‘천전리성’이라고 불리는 이 산성산 성터에서 최후까지 싸우다 몰살됐다. 그래서 이 바위고개는 여편네들은 넘지 못하는 금녀(禁女)의 고개다.

등억 들판은 여장부들의 전장이다. 남정네들은 서울로 가고, 등억마을 화천(花川, 일명 작괘천) 둑 풀빛은 짙어가는데 진달래 꽃은 자꾸만 핏빛 노을을 닮아간다. 전쟁의 기억을 잊고 들로 산으로 헤매던 남자들은 이윽고 성공을 꿈꾸며 괴나리 봇짐을 샀고, 여편네들은 진달래 꽃망울 피어나는 바위고개에 올라서서 그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 무렵(1965)에 나온 노래가 김상희의 ‘울산큰애기’다.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 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대나/ 나도야 삼돌이가 제일 좋더라…‘울산큰애기’(작곡 나화랑, 작사 탁소연)

▲ 산성산 진달래.

고려대를 갓 졸업한 김상희가 공전의 대 히트를 친 ‘울산큰애기’. ‘울산큰애기’는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탁소연의 친척 아주머니가 들려준 집안 며느리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서울로 떠난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왔던 울산 큰애기(맏며느리)의 이미지는 사랑스럽고 복스러운 김상희의 얼굴과 오버랩됐다.

울산 중구가 지난 9일 ‘2019 올해의 관광도시’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낯을 간지럽히는 봄 바람에 서울로, 대처로 뿔뿔이 흩어졌던 남정네들이 전쟁같은 삶에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봄. ‘울산큰애기’의 품에 안겨 안락한 봄을 맞을 일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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