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그리움은 보릿고개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웠어도/ 느티나무 숲 속에선/ 이따금 풀꾹새가 울었고/ 밤이면 은빛 물안개가/ 허리까지 차오르곤 하였다 ‘입하(立夏)’ 전문(양승준)

입하(立夏)는 여름의 시작을 뜻한다. 입동(立冬)이나 입춘(立春)은 잘 알아도 입하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다. 철쭉의 빛이 바래면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 커지고 그 사이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면 비로소 여름이다. 어린이 날이 그제였고, 어제는 낮기온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입하였다. 봄은 이미 끝났고 계절은 여름 모드로 돌아섰다.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는 말은 입하가 되면 모심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재래식 써레 대신 전기를 이용한 신형 오리발 써레, 트랙터 써레가 쓰이고 있다.
 

▲ 이팝나무

풀국도 못 먹은 강파른 보릿고개/ 풀꾹새가 우네/ 새끼들 먹일 양식 없어/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죄/ 풀꾹 풀꾹 풀꾹/ 세월로도 용서가 안 되는 가난이란 죄/ 그 옛날 비극처럼 풀꾹새가 우네/ 어느 하늘에선가/ 울어 지친 네 목은 선혈인데/ 무덤가 꽃이 된 네 피는 하얗다지/ 풀꾹 풀꾹 풀꾹/ 보릿고개 추억이 아련하건만/ 먼 산 어드메서 전설 아닌/ 풀꾹새가 우네 ‘풀꾹새가 우네’ 전문(흙돌 심재방)

풀꾹새는 뻐꾸기의 경상도 사투리다. 밤마다 피를 토하며 울다 지쳐 제 피를 되마시며 우는 뻐꾸기처럼 5월의 초여름은 슬픈 전설같은 계절이다. 새끼들 먹일 양식을 구하지 못해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보릿고개 선혈이 묻어 있는 계절이다.

요즘 가로변에 활짝 피어나고 있는 이팝나무꽃은 두가지 유래가 있다. 입하에 꽃이 핀다고 해서 ‘입하목(立夏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는데 이 이름이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이 있고, 원래 ‘이밥나무’였는데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꽃송이가 이성계가 먹던 흰쌀밥처럼 보여서 ‘이밥’이라고 불렀다는 설에 눈이 가는 것은 힘든 보릿고개의 비극 때문일까. 풀국도 못 먹은 뻐꾸기에게 이팝나무는 꽃이 아니라 밥이었다.

어느 시인은 아이의 얼굴을 ‘감나무 새순’이라고 표현했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강파른 보릿고개를 넘어 아이들은 또 자란다. 이팝나무 꽃송이들이 여름을 재촉하는 계절. 입하는 풀꾹새의 울음이 변주되는 전설의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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