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찔레, 장미, 아카시아 꽃이 난만(爛漫)한 계절이다. 하얀 찔레꽃이 눈처럼 내린 논밭길에는 아찔한 향기가 넘쳐나고, 울타리 너머로는 붉은 장미의 열정이 너울거린다. 푸름 속에 감춰진 아카시아의 흰꽃은 환상의 병풍을 만들어낸다.

…창송취죽(蒼松翠竹)은 창창울울(蒼蒼鬱鬱)한데/ 기화요초 난만중(琪花瑤草爛漫中)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난다/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 유산가(遊山歌)

경기 십이잡가 ‘유산가’는 녹음방초 흐드러지는 산을 유유히 즐기는 노래다.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는 울창하고, 아름다운 꽃과 풀들이 만발하여 흐드러진 가운데, 꽃 속에 잠든 나비가 사뿐하게 날아오른다. 버드나무 위에 나는 꾀꼬리는 마치 금조각 같고, 꽃 사이에서 춤추는 나비들은 어지러이 날리는 눈송이 같구나….

버드나무 위에 나는 꾀꼬리, 즉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한 세트다. 김홍도가 그린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는 ‘말 위에서 꾀꼬리(鶯) 소리를 듣다’라는 뜻의 작품이다. 선비가 말을 타고 어딘가를 가는 중 문득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노래를 부른다. 뒤돌아 보니 암수 꾀꼬리가 선비를 보며 화답하고 있다.

수양버들과 꾀꼬리는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일종의 ‘음성 메시지’다. 버드나무 류(柳) 자는 발음이 ‘류’로, 머문다는 뜻의 ‘유(留)’ 자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예로부터 여인네들은 대동강 나루터에서 남자에게 버드나무를 꺾어주면서 이별을 만류했다. 수양버들에 앉아 있는 꾀꼬리의 울음은 떠나지 말 것을 호소하는 여인네의 절규다.

오늘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생장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자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은 둘(2)이 결혼해 하나(1)의 부부로 산다는 의미다. 중국 후한시대 광무제가 남편을 잃은 누이에게 송홍이란 신하를 소개시켜 주려고 어느날 송홍을 불러 은근히 떠보았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말에 몸이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생활이 넉넉해지면 처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송홍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라 합디다.” 가난하고 천할 때 맺은 사귐은 잊어서는 아니되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으면서 고생한 조강지처는 내보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었다.

찔레와 장미와 아카시아는 아름다운 꽃 속에 가시가 돋아나 있다. 그렇지만 그 가시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삶의 원기를 지탱해주는 힘에 다름아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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