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장마 중에 토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 능소화(凌宵花)다. ‘하늘을 능멸한다’는 뜻의 이 능소화는 바다생물로 치면 문어의 빨때와도 같은 흡착근(吸着根)를 지니고 있어 웬만한 담벽은 훌쩍 넘어간다.

안동 하회마을 안길로 들어가면 붉은 토담 위로 주홍빛 능소화가 홍조 띤 규수처럼 골목길을 조용히 넘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흙담 위로 피어나는 능소화의 다른 이름은 ‘양반꽃’이다. 조선시대 때 능소화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어 서민들이 집안에 이 꽃을 심으면 잡아다 곤장을 쳤다고 한다. 고상한 기품과 그윽한 향기가 선비의 그것과 닮았다고 해서 대갓집에서는 능소화를 크게 숭상했으며, 조정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로 능소화를 썼다고 한다.

능소화/ 담벼락에/ 뜨겁게 너울지더니 능소화/ 비었다 담벼락에/ 휘휘 늘어져 잘도 타오르더니 여름 능소화/ 꽃 떨구었다 그 집 담벼락에/ 따라갈래 따라갈래 달려가더니 여름내 능소화/ 노래 멈췄다 술래만 남은 그 옛집 담벼락에/ 첨밀밀첨밀밀 머물다 그래그래 지더니 올여름 장맛비에 능소화// 그래 옛일 되었다 가을 든 네 집 담벼락에…‘염천’ 전문(정끝별)

▲ 능소화

지난 1997년 온 국민들의 가슴을 울린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영화 <첨밀밀(甛蜜蜜)>의 O·S·T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여명, 장만옥 주연의 이 영화는 제목처럼 ‘꿀처럼 달콤한(甛蜜蜜)’ 사랑 이야기다. 노래를 부른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달님이 이런 내 마음을 대신 말해 주네요’라는 뜻이다.

달콤해, 당신의 미소는 달콤해/ 마치 봄바람 속에서 꽃이 피는 것 같아/ 봄바람 속에서 피는 것 같아/ 어디지 어디서 너를 본 것만 같아/ 너의 웃음이 이렇게 낯익은데/ 잠시 생각이 나질 않아/ 아 꿈속에서/ 꿈속에서 너를 봤었어/ 달콤한 너의 미소/ 그래 너 그래 너였어 꿈에서 본건 바로 너였어….

구중궁궐 궁녀 ‘소화’는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성은을 입고 빈에 올랐다. 성은을 입고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임금은 한번도 소화를 찾지 않았다. 시기와 음모 속에서 소화는 결국 죽고 말았다. 소화는 유언대로 담장밑에 묻혔고 그 자리에서는 능소화가 피었다. 소화는 더 높이 더 멀리 임금을 보기 위해 하늘 끝까지 피어올랐다.

토담골목 모퉁이에 주홍빛 전설이 넘실거리는 장마철 한 가운데다. 첨밀밀첨밀밀 꿀처럼 달콤한 장마철에 등려군의 노래소리가 감미롭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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