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오늘은 ‘염소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다. 단단하기로 이름 난 염소의 뿔조차 녹아내린다는 대서는 ‘가마솥’ 더위를 상징하는 날이다. 어제는 보신탕 집만 보아도 개가 주눅든다는 삼복(三伏) 중의 중복(中伏)이었다. 어찌보면 보신탕과 가마솥은 한 세트다.

태풍 다나스가 지나가자마자 22일 울산의 기온이 32℃ 이상 치솟았다. 대서에는 예로부터 산정(山亭:산속에 지은 정자)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다. 이맘 때 산 속 정자 앞 계곡에 앉아 발을 담그는(濯足) 맛은 천하에 비길 데가 없었다. 하물며 수박 한 덩어리에 얼음같은 막걸리 한잔까지 걸치면 금상첨화. 옛날부터 선비들은 탁족(濯足)을 최고의 피서법으로 여겼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이 말은 초나라 굴원(屈原)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맹자>에서는 ‘탁영탁족(濯纓濯足)’으로 함축됐다.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스스로의 처신과 인격 수양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선비들이 계곡에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과 몸을 깨끗히 한 것도 바로 이 탁영탁족의 이치와 통한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작가 미상의 고승탁족도(高僧濯足圖), 최북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등이 있다. 그만큼 여름 계곡의 발씻는 행동이 미학으로 발전됐다고 할까.

차디찬 계곡에서 몸을 식히는 방법과 달리 오히려 뜨거운 음식을 먹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이른바 ‘복달임 음식’이 그것이다. 옛 사람들은 쇠진해진 몸을 보신하기 위해 ‘이열치열’을 생각하며 푹 고아낸 삼계탕, 개장국, 육개장 등을 주로 먹었다.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둘째 형 정약전과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하루는 형으로부터 ‘짐승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짐승고기를 권장했다. 이 짐승고기가 바로 개고기다. 정약용은 개 잡는 법에서부터 삶은 법까지 상세하게 적어 보냈다. 요즘에는 보신탕을 두고도 말이 너무 많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다. 안 그래도 말 많은 세상, 시원하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탁족이나 실컷 하고 싶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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