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모레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서리는 상강 전후에 내리는 ‘무서리’와 겨울 문턱을 넘으면서 모든 산천초목을 시들게 하는 ‘된서리’가 있다. 무서리의 ‘무’는 묽다는 뜻으로 ‘물’을 의미한다. 된서리는 그야말로 천하를 기죽게 만드는 서리를 말한다. ‘무서리 세 번에 된서리 한번’이라는 말이 있듯 상강이 지나면 조만간 된서리가 오게 돼 있다. 지금은 무서리가 내리는 계절, 황금빛 들판은 어느새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고 있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고향의 노래(김재호 시, 이수인 곡)

▲ 서리 맞은 국화.

아직 입동(11월8일)은 남았는데 만추의 서정은 어느새 겨울을 향해 저만치 먼저 가고 있다. 그만큼 가을의 시간은 짧다. 울산도 조만간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나목은 나뭇가지 사이로 메마른 바람소리를 낼 것이다. 설악산 정상 부근에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깊어가는 만추에 그래도 위로를 주는 것이 국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낙목한천에 그래도 홀로 남아 친구해주는 국화가 고맙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

국화는 뭇 꽃들이 시들고 난 늦가을에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핀다하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했다. 또 일찍 자라 늦게 피니 군자의 ‘덕(德)’이요, 서리를 이겨 피니 선비의 ‘지(志)’이며, 물 없이도 피니 가난한 선비의 ‘기(氣)’라 하여 국화의 삼륜(三倫)이라 했다.

이정보(1693~1766)는 조선 문신이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며 바른말을 잘했다. 때문에 여러번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조판서, 대제학,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추상(秋霜) 같은 이정보도 친구 앞에서는 허리띠를 풀었을 것이다. 은은한 가을 달빛 속으로 벗님이 찾아오면 무서리도 봄눈 녹듯 녹았으리라.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희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흥타령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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