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답장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 ‘개나리’ 전문(이은상)

미세먼지와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가운데서도 꽃은 피었다. 매화가 피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개나리가 만개했다. 이은상은 ‘봄이 왔다’는 표현 대신 ‘매화가 지고 개나리가 피었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듯, ‘봄’도 아무렇게나 쓰이지 말기를 바랬던 같다.

‘봄’은 ‘보다(見)’에서 나왔다고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은 말했다. 실제로 봄에는 볼 것이 많다.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도 그렇고, 나뭇가지마다 피어나는 갖가지 꽃도 그렇다. 이런 봄을 소중하게 다루기 위해 이은상은 함부로 ‘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수묵화에서 달을 표현할 때 담묵으로 주위를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환한 달빛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이다. 봄은 달처럼 아무런 색깔을 입히지 않는 귀중한 것이다.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린 대표적인 그림이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다. 이 그림은 5만원 지폐 뒷면에 들어 있어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매화꽃이 지고 나면 개나리가 지천으로 샛노랗게 피어난다. 조항범 교수(충북대)에 의하면 개나리는 꽃이 아니라 나무이름이다. 꽃 이름은 ‘개나리꽃’이라고 해야 맞다. 개나리는 18세기 후반 문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개나리는 원래 ‘어어리나모’라 불렸다. 어어리나모가 동의보감(1613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단어의 역사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나리는 노랗게 핀 꽃 모양이 들풀의 하나인 ‘개나리’와 비슷해 ‘개나리나무’라 부르다가 개나리로 고착화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당신입니다.……

‘다 당신입니다’ 전문(김용택)

단풍은 하루에 25㎞씩 남하하지만 꽃전선은 그보다 조금 빠른 30㎞씩 북상한다. 울산의 명소 작천정 벚꽃터널에는 벌써 벚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가운데서도 꽃전선은 물러설 줄 모른다. 봄에는 수십종의 꽃이 난만하게 피지만 절대로 순서를 바꾸는 법이 없고 개화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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