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홍 사회부 기자

울산에서 또 한 명의 소방관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돌이켜보면 젊은 소방관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될 현장이었기에 그의 순직이 더욱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울산은 삼환아르누보 화재라는 대형화재에서도 인명피해 없이 잘 대처했었기에 이번 사고가 더욱 안타깝다. 화재가 난 건물은 40년 넘게 안전점검이나 소방점검이 이뤄지지 않았고, 옥상층에는 불법·무단증축한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수년전 울산에서는 눈 앞에서 동료를 잃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정희국 소방관이 있었다. 당시 사고를 계기로 정신적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소방관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트라우마 센터 설립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여전히 큰 진전은 없다.

이번 사고로 고(故) 노명래 소방관 주위의 많은 소방대원들이 짐작도 하지 못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각종 정신건강·상담이 진행되지만 시간과 장소의 한계 속에서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소방청은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치료를 위해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운영, 마음건강진료비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심리상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 일과중 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받는다는 현실 탓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시설이 전혀 없다. 경찰이 9곳, 해양경찰이 4곳의 심신수련원을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방청은 올해 예산안에 소방 심신치유수련원(트라우마 센터) 건립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예산은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예결위 최종 심의에서 빠졌다.

눈 앞에서 동료를 잃었다는 죄책감과 슬픔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앞으로 재난과 사고 유형이 복잡·다양해지면서 소방관들의 스트레스와 외상 후 트라우마, 우울증 등은 더 심해질 지도 모른다. 혹여나 또다른 정희국 소방관이 나오기 전에 제대로 된 정신적 치료시설을 확충해 소방관들의 충격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 정세홍 사회부 기자 aqwe0812@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