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의견-장애인의 참여와 복지_이경희(춘해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총선이 드디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매일 계속되는 비슷비슷한 총선 관련 기사들에 식상해 있던 중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있었다.
 모 정당에서 부산지역의 중증여성장애인을 전국구 후보 1번으로, 또 다른 정당에서도 역시 부산지역의 시각장애인을 당선이 확실시되는 순번인 전국구 8번으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해왔다. "어떤 사람이냐?"고".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지역구 의원에 비해 "무임승차"라고 해도 될 전국구 의원이 되기 위해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줄을 대고 치열한 물밑작업을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속된 표현으로 "따 놓은 당상"이라 할 수 있는 1번과 8번이라면 "어떤 인물"인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들은 전국구 후보에 자천타천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월등한 학벌이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특히 그 여성장애인 후보의 경우 무학에 무일푼이라는 사실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 힘있는 두 정당에서 이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장애당사자이며 장애인운동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장애의 범주가 15개 유형으로 확대되고 장애인의 "완전참여와 평등"이 세계적인 화두가 되어 있는 현시점에서는 장애인복지정책에 대한 장애인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정부 및 지자체들의 예산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장애인들의 사회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울산의 경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을 장애인복지에 할당하고 있다. 장애인복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설 등에서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속에서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 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시설지원과 행사성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또한 시의 지역사회 장애인복지시책을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되는 것 외에는 거의 형식적인데 머물고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 전시용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울주군의 "장애인시범거리조성"사업의 내용은 교통음향신호기 8대 설치가 고작이다. 시각장애인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필요한 음향신호기만으로 모든 유형의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시범거리"가 조성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또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아닌 곳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도로를 그냥 횡단해도 안전한 것인지, 전국의 군지역 중 가장 넓다는 이 지역에 횡단보도가 8개뿐인지도 궁금하다. 이동목욕차량 운영도 마찬가지다.
 작년 6월 통계만 해도 2만5천명을 넘는 장애인구에 대해 1대의 목욕차량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더욱이 이 한 대의 차량도 어떤 대기업의 기증으로 마련되었다는 것은 울산지역 장애인복지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안이라 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시당국이 장애인복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장애인복지시책의 입안과정에 장애당사자 및 장애전문가들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장애인복지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장애인이 시혜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복지수혜자"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로 복지를 이용하는 "소비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제품 생산 전 소비자의 욕구를 먼저 확인하는 것처럼 장애인복지도 소비자인 장애당사자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필요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 당사자나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자세가 요구된다. 장애인복지담당자들이 이런 자세를 지닐 때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비용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정상화된 생활보장이 주요한 정책과제가 돼 정당조차도 장애당사자를 참여시킬 수밖에 없는 현시점에서, 타 시도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울산의 장애인복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장애당사자와 장애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가칭 "장애인복지자문위원회"를 상설화하거나 사회복지위원회에 장애위원을 참여시키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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