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다가오지만 11살짜리 여진(여·가명)이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별로 즐겁지가 않다. 친구들처럼 나란히 손을 잡고 나들이 갈 아빠도, 가지고 싶은 책을 선물해 줄 엄마도 없기 때문이다.
 여진이는 11년째 중풍을 앓고 있는 이운이(69) 할머니, 남동생 철수(8·가명)와 함께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반신마비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는 여진이 부모가 이혼해 각각 집을 나간 뒤 벌써 6년째 두 아이를 맡아 키우고 있다.
 여진이와 철수가 학교에 가고 나면 종일 방안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 할머니는 낯선 방문자들을 반기며 "내가 이렇게 몸이 아파서 죽고 싶어도 저것들 불쌍해서 눈을 못 감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여진이네의 유일한 소득은 매달 동사무소에서 지급되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 급여 38만8천480원이 전부다. 월세 10만원을 내고 나면 나머지 돈으로 세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이씨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건강검진은 물론 동네의원에서 물리치료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여진이네 집에는 요즘 아이들 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웬만한 장난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씨는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준비물이 많지만 1천원이상 되는 것은 한번도 못 사줬다"며 "다른 아이 부모들은 학원도 두서너곳을 보낸다는데 여진이는 학교 보내기도 빠듯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인데도 빠듯한 살림때문에 제대로 된 간식 한번 사준 적이 없는 수연이와 철수가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은 것도 큰 걱정거리이다.
 여진이는 동생 철수와 티격태격할 때는 영락없는 아이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할머니를 도와 청소를 하고 밥을 차릴만큼 야무지다.
 종일 방안에만 있어 답답한 할머니를 위해 수업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달려오는 여진이는 요즘들어 부쩍 몸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 할머니가 걱정이다.
 여진이는 "우리 할머니가 건강해져서 우리랑 오래 사는게 소원"이라며 "할머니가 아프다면 철수와 다리를 주무르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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