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하늘에서 바라본 작은 하늘, 소천봉

밀양 상동면 632m 소천봉
산 남쪽 남아있는 석축으로
산성터였음을 알 수 있어

매화리 출발 코스 일반적
울산 의병장 김태허 생각에
그가 여생 보낸 박연정 출발
수어대·빙허대 지나 산길로
폭 좁은 능선 따라 소천봉행

용암봉까지 완만한 길 걷다
시멘트길 만나면 솔방마을
전형적인 산골 오지마을로
우거진 소나무 숲으로 인해
역사속 난리에도 참화 피해

▲ 소천봉을 오르는 길은 밀양 상동면 매화리에서 출발해 소천봉을 거쳐서 용암봉으로 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나, 매화리에서 출발하는 코스 대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박연정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1.
밀양에는 작은 하늘이 있다. 소천봉(小天峰, 632m),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동쪽으로는 용암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동창천이 흐른다. 산 정상 부근에 성터가 남아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뒷말리산성이라고 부른다. 산의 남쪽 부근에 희미하게나마 석축이 남아 있어 이곳이 산성 터였음을 알려준다. 소천봉은 운문지맥에 속한다. 낙동정맥의 명산 가지산에서 불거진 운문지맥은 운문산~억산~구만산~육화산 등 영남알프스의 북쪽 지붕에 걸쳐 있다. 운문지맥은 산꾼들이 대간이나 정맥 아니면 즐겨 찾는 곳이지만 소천봉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소천봉을 오르는 길은 몇 개 있지만, 상동면 매화리에서 출발해 소천봉을 거쳐서 용암봉으로 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나는 매화리에서 출발하는 코스 대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박연정(博淵亭)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박연정-수어대-삼거리(256m)-쉼터바위-소천봉-오실만댕이-이정표(임도)-다솔사-솔방마을’이다. 내가 매화리 대신 박연정 코스를 택한 이유는 순전히 울산의 의병장 김태허 때문이다.

박연정은 울산부사를 지낸 김태허의 호이다. 김태허는 밀양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해 많은 전공을 세웠다. 김태허는 처음에 울산에서 창의한 의병과 관군을 통합해 지휘할 임시 군수로 선임됐는데, 아이포 전투, 경주 안강 전투, 1·2차 도산성 전투 등에서의 전공으로 전란이 끝난 후에 정식 울산 군수로 전임됐다. 뒷날에 관직을 사퇴한 김태허가 여생을 보낸 곳이 박연정이다. 박연정이 있는 곳은 본래 명종 때 능성현감을 지낸 이담용이 지은 관란정(觀瀾亭)이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지대가 이곳에 와서 진을 친 일이 있으며, 전란 중에 관란정과 마을이 모두 불타버렸다. 이후 관란정 터는 방치됐고, 광해 5년(1613년)에 김태허가 관란정 터에 박연정을 세웠다.
 

▲ 소천봉을 오르는 길은 밀양 상동면 매화리에서 출발해 소천봉을 거쳐서 용암봉으로 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나,  매화리에서 출발하는 코스 대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박연정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 소천봉을 오르는 길은 밀양 상동면 매화리에서 출발해 소천봉을 거쳐서 용암봉으로 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나, 매화리에서 출발하는 코스 대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박연정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택했다.

 

2.

박연정 오른쪽 담장을 따라가다 비석 옆으로 올라간다. 소나무 숲속 길을 따라 무덤 사이로 오르면 능선에 선다. 여기서 왼쪽으로 잠시 내려가면 수어대(數魚臺)다. 수어대란 이름은 강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속에 노는 고기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수어대 옆 강가의 벼랑 끝에 툭 튀어나온 암반이 빙허대(憑虛臺)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빙허대에 오르면 동창천뿐만 아니라 멀리 북쪽 운문호 방향으로 오례산의 바위 정상부가 눈에 두드러진다. 되돌아서서 능선을 오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탓인지 길은 희미하다. 하지만 대체로 폭이 좁은 능선을 따르므로 길을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완만한 오르막을 잠시 걸으면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짧은 급경사와 완만한 길을 반복해 오르면 왼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또 나온다. 직진하다가 살짝 오른쪽으로 돌아 무덤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 이르면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는데, 오르막을 지나 10분쯤 더 걸으면 쉼터바위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서 있다. 삼거리봉을 지나 드문드문 바위가 있는 길을 20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 돌탑이 나오고 이윽고 만나는 소천봉 정상,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이름처럼 하늘이 작게 보인다.

소천봉에서 용암봉으로 가는 길은 짧은 급경사가 한두 곳 있지만 대체로 완만한 길이다. 급경사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이 쓰러진 나무나 풀들로 덮여서 조금 거칠다. 매끈하게 잘 닦여진 등산로를 다니다 보면 이런 길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소나무 가득한 경사길을 300여m 내려오면 솔방마을에서 올라오는 늘솔길을 만나게 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오실만댕이라고 부른다. 만댕이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경북지역 사투리이다. 오실만댕이에서 용암봉으로 가는 길은 평지 같은 능선 길이어서 걷기가 쉽다. 소천봉 기점으로 대략 600m 정도 걷다 보면 솔방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따라서 오른쪽으로 250m쯤 내려오면 시멘트 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솔방마을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직진해 계속 가면 경사진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오르면 용암봉(684.7m)이다.

솔방마을은 북쪽과 서쪽을 소천봉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고 동쪽의 용암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마을 앞을 가리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 오지 마을이다. 긴 역사 속 수많은 난리를 겪었으면서도 솔방마을은 깊은 산골과 우거진 소나무 숲으로 인해 단 한 번도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솔방마을의 ‘솔방’은 ‘모두, 전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방 사투리이다. 임진왜란 때 다른 마을은 전화를 겪었으나, 솔방마을은 소나무들에 가려져 참화를 모두 피했다는 이야기에서 지명이 비롯됐다고 전한다. <조선지형도>(1917)에 도곡리 일대에 ‘송방(松坊)’으로 지명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마을의 무성한 소나무와 관련해서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도 추정된다. 솔방마을은 밀양 최고의 오지 마을답게 구석구석에 아직 옛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유를 갖고 차분히 둘러보면 ‘아! 여기가 오지로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마을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다솔사(多率寺)이다.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와 한자까지 똑같다. 절 입구 비석에 대한불교 조동종이라고 적혀 있다. 조동종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크게 성행하는 불교 선종 계통의 대표적인 종파이다. 중국 불교에서 조동종은 선종의 여러 종파 중 가장 먼저 성립된 종파로 대표적인 사찰이 소림사이다. 일본의 조동종은 일본 불교의 최대 종파로서 종조 도겐이 1277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을 계승해 일본에 전파함으로써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조동종은 중국 당나라에서 조동종을 처음 시작한 동산양개 선사를 종조로 하는데, 최근에 중창됐다.

3.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곧 추석이다. 나 어릴 때처럼 가슴 설레지는 않지만, 다들 차례보다는 연휴를 맞이해 놀러 갈 계획을 짜는 때이지만, 그래도 추석은 추석이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가을의 중간인 음력 8월16일에 있다고 해 중추절이라고 한다.

중국의 추석은 인간을 위해 세상을 구한 사람이 그 아내를 그리워해 제사를 지내는 데서 유래했다. 사람을 위하는 마음,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한 날이 추석이다.

추석 하루만이라도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추석이 조상을 그리워하기는커녕 조상을 잊고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자기만을 위하는 날로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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