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지난 4일은 입춘(立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며칠 동안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설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다가오면 완연한 봄이다. 그런데 입춘과 우수 사이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가지치기다. 한자로는 전정(剪定) 또는 전지(剪枝)라고 한다. 전지는 생장에 무관한 필요없는 가지나 생육에 방해가 되는 가지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전정은 수목의 모양이나 개화·결실 등을 좋게 하기 위해 가지나 줄기의 일부를 잘라내는 작업을 이른다. 굳이 단계로 따지자면 전지는 낮은 단계, 전정은 기술적으로 높은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가지치기는 아버지의 오랜 버릇이었다./ 가지로 갈 양분을 열매로 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가지치기뿐이라는 것을 아버지 말씀하셨다./ 아버지 가지치기 하던 전지 가위/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새파랗던 날마저 벌겋게 녹슬어 있다.…합세해 항의하듯 아버지 가신 후/ 작은 열매만 맺는 배나무도 무성해진 잎만/ 철마다 대놓고 내 눈앞에다가 흔들어 대는 것이다.… ‘가지치기’ 일부(김왕노)

▲ 가지치기한 목백일홍.
▲ 가지치기한 목백일홍.

과수나무는 가지치기에 따라 수확이 달라진다. 한 나무에 과일이 10개가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당분은 10개 과일에 골고루 분산된다. 하지만 열매 9개가 달릴 가지를 미리 잘라버리면 당분은 오로지 1개에만 집중돼 당도도 높아지고 크기도 커진다. 경험 많은 농부들은 죽은 가지를 쳐내는데 그치지 않고 멀쩡하게 잘 자란 싱싱한 가지들까지 망설임 없이 베어버린다. 심지어 수확철이 다가오면 최상 등급으로 판매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열매까지 가차 없이 따서 버린다. 가지 몇 개, 열매 몇개에 욕심 부리다보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길가 정원을 자세히 보면 백일홍 웃자란 가지들이 모두 베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웃자란 가지들이 무성해지면 서로 엉켜 햇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인생사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웃자란 욕심과 집착의 가지들을 베어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고 했다. 배움이란 매일 채우는 것이고, 도(道)란 매일 비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가지치기는 몸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며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다. 입춘을 맞아 가지치기를 하면서 한 수 배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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