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겠다고 한다. 어제는 눈 녹아 비가 내린다는 우수(雨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울산에서는 이틀 동안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지난 4일이 입춘(立春)이었고, 며칠 안 있으면 경칩(驚蟄)이니 계절상 지금 내리는 비는 봄비가 맞긴 맞다. 요즘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뜻의 신석정 시인의 시 ‘대춘부(待春賦)’가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부(賦)는 옛 중국에서 시를 형식과 성격에 따라 6개 분야로 나눈 것의 하나다. 고려시대 과거시험에는 시(詩)·부(賦)·송(頌)의 세 가지를 글짓기로 출제했다. ‘대춘부(待春賦)’는 부(賦)의 형식을 빌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수 즈음이면 통도사 경내에도 홍매(일명 자장매)가 발갛게 꽃을 피운다. 필자의 마당에도 어김없이 홍매가 피었다. 꽃의 북상속도는 하루 평균 22㎞. 무거천 등 양지쪽에는 벌써 백매(白梅)가 만개했다. 전라도 쪽에는 매화를 구경하려는 탐매객들이 절마다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의 한 비구니가 지은 오도송(悟道頌) 중에 ‘尋春’(봄을 찾다)라는 시가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盡日尋春不見春)/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 구름만 밟고 다녔네(芒鞋遍踏朧頭雲)/ 지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歸來偶過梅花下)/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春在枝頭已十分)’

우수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09년 허진호 감독이 만든 ‘호우시절(好雨時節)’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중국 성당(盛唐)시대의 시성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

단비는 내릴 때를 스스로 알아(好雨知時節)/ 봄이 되니 알아서 내리네(當春乃發生)/ 바람 타고 밤에 모르게 내리어(隨風潛入夜)/ 소리도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潤物細無聲)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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