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물고기 부처가 숨쉬는 곳, 만어산
밀양에 위치한 699.6m 높이 산
등산로 입구 원점회귀 코스 산행
신라 왕들이 불공 드리던 만어사
자욱한 안개가 전각 신비감 돋워
절아래 수없이 많은 돌 ‘어산불영’
삼국유사에 전하는 설화 곱씹으며
40분만 더 오르면 나타나는 정상
낙동강 조망에 차 한잔 여유 만끽
마을·선교종 부도공원 지나 하산

▲ 경남 밀양시 만어산 내 만어사 아래에 펼쳐져 있는 어산불영은 규모가 꽤 크다.

1.

만어산(699.6m)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단장면 법흥리와 삼랑진읍 용전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밀양)에 “부에서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밀양에는 ‘밀양의 신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곳이 있다. 이는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 천년고찰의 표충사에 있는 표충비각, 그리고 만어산 암괴류가 그것이다. 만어산과 만어사의 이름은 모두 이 암괴류와 관련이 있다.

조금 일찍 낙동강 둑길 따라 삼랑진으로 향했다. 원동 매화마을을 지나고 천태사에 잠시 들렸다. 천태사를 지나 조금 오르면 인근에서는 가장 멋진 용연폭포가 있다. 진달래꽃 필 즈음에 천태산을 찾아야지 다짐했다. 삼랑진역을 지나고 이윽고 만어산 산행의 출발지인 우곡마을에 도착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만어사까지는 안전한 임도로 걷기로 했다. 산행코스는 ‘만어산 등산로 입구~임도~만어사~만어령 삼거리~만어산 정상~선교종 부도공원~연못 있는 삼거리~만어산 등산로 입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이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감물고개로 가는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임도 따라 6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만어사 경내로 이어진다. 자욱한 안개에 가려진 만어사의 전각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전각들을 둘러 보고 약수 한 잔 마시고 절 아래에 펼쳐져 있는 너덜바위들을 보았다. 규모가 꽤나 크다. 어산불영이다.
 

▲ 만어사 삼층석탑과 대웅전.
▲ 만어사 삼층석탑과 대웅전.

2.

<삼국유사> 권 제3 탑상 편 ‘어산불영’(魚山佛影)조를 보면,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만어산은 옛적의 자성산(慈成山)이며 혹은 아야사산(阿耶斯山)이라고도 하며 옆에는 아라국(呵囉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해변에 내려와 사람으로 화해 나라를 다스리니 이가 바로 수로왕이다. 이때 경내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옥지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는 5명의 나찰녀가 있었는데 왕래하며 통하고 있어, 때로 우레와 비를 내린 지 4년이 되어 오곡이 익지 아니하였다. 왕이 주술로써 금하려 하였으나 능히 이루지 못해, 드디어 부처를 청해 법을 설하게 하니 나찰녀가 계를 받고 이후로 해를 끼치는 일이 없었고 동해의 어룡이 화해 굴속 가득히 돌이 되어 각각 경쇠 소리가 났다. 명종 11년에 만어사를 창건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일연 스님은 위의 사실을 근거로, 이 설화의 근원을 불경에 나오는 ‘북천축가라국불영’ 이야기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이 설화는 불교가 전래되어 불경을 깊이 이해하고, 이 지방과 부합하는 점을 발견한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로왕을 부처와 연관시키고 부처의 도움을 청하였다는 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불교의 도움으로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불국일체사상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불경과 부합되는 지역을 발견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구성해 불심을 고취해 보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부처를 통해 토속 세력과의 갈등을 극복하고 불교 신앙이 신라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달리 전하는 바로는 신라 때 어느 왕이 해안을 침노하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었으며, 그 용이 일만 고기떼를 거느리고 부처 영상이 어리는 이 산으로 와서 용은 미륵불이 되었고 고기떼들은 굴속의 크고 작은 바위와 돌로 화했다고 하는데 이는 신라 문무왕의 동해 수중릉과 서로 닮은 점이 있다.

실제로 만어사 남쪽에 있는 대형의 입석 형상을 일컬어 만어산 미륵이라 하고 기도처로 삼고 있으며, 굴속의 크고 작은 고기 모양의 돌들은 부처 영상이 어린다는 산정을 향해 일제히 엎드려 있는데 지금도 두드리면 실제로 경쇠 소리를 내고 있다. 만어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신라의 왕들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3.

만어사 경내에서 만어산 정상을 가려면 너덜바위를 건너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르는 것과 되돌아 나와서 만어사 갈림길에서 임도 따라서 정상을 향해 위로 걷는 방법이 있다. 보통은 너덜바위를 건너서 정상을 향했는데, 진눈깨비 같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안전하게 임도 길을 택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만어령 삼거리를 만난다.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을 택해 걸으면 이동통신 기지국이 나온다. 북쪽으로 탁 트인 조망이 반긴다. 안개가 없으면 멀리 억산, 운문산, 천황산, 재약산, 향로산, 영축산 등 영남 알프스의 높은 산들을 볼 수 있다. 만어사 기준으로 약 40분이면 정상에 선다. 금오산 토곡산 신어산 무척산 삼랑진과 낙동강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정상석에서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마셨다. 추위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몇 년 전 산악회 사람들과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봄이어서 꽃들도 보였는데, 2월 겨울의 끝자락에 만난 비는 그저 써늘할 뿐이었다. 하산을 서둘렀다. 흐린 날을 고려해 능선길 대신 오른쪽 임도로 내려간다. 잇단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무시하고 직진, 정상에서 약 30분에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감물리와 구천산 방향이다. 감물마을은 다랑이논으로 유명하다. 밀양의 3대 오지 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삼랑진 쪽으로 도로가 나서 오지 마을이라고 하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구천산을 넘으면 밀양의 또 다른 오지 마을인 정승골이다. 정승골 역시 지금은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선 탓에 오지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변해 있다.

오른쪽 만어사 방향으로 꺾는다. 임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석불이 조성된 선교종 부도공원이다. 본격적인 하산 길, 10분쯤 가다가 무덤이 5개 있는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산비탈 길을 가다 옛 다랑논 흔적을 지나 하산하면 얼마 가지 않아 쌍무덤이 나온다. 추전마을 임도에서 연못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서 오른쪽 콘크리트 길를 따라 내려가면 우곡소류지를 만난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 양면이 있다. 어느 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게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모든 게 인식의 주체인 내 마음의 문제이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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