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밑에서도토리 줍다가다람쥐랑 눈이 마주쳤다.아뿔싸다람쥐도도토리 줍고 있는 걸몰랐구나.주운 도토리제자리에 놓아두고뒷걸음으로산에서 내려왔다. 상수리나무 열매 도토리는 묵을 쑤어 먹지요. 궁핍한 시대엔 끼니를 때우기 위한 수단으로 좋은 식재료가 되어 주었지만, 지금은 별미로 생각들 하지요. 옛날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
코스모스가빨간 양산을 편 채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얘,심심하지?들길이빨간 양산을 받으며함께 걸어가 주고 있었다. 계절이 색연필로 그려 놓은 색색 가을, 참 아름답네요. 가을의 특징은 가벼워진다는 것이지요. 봄여름 내내 땀 뻘뻘 흘리며 채우고 영글게 했던 것들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니까요. 그러한 풍경을
내 일기장엔유령이 산다.까만색을무지 싫어하는하얀 종이 유령이 산다.그래서 나는아주 짧게 쓴다.그래서 가끔새하얗게 비워 둔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 기록이지요. 그런가 하면 일기는 생각하는 삶이지요. 더구나 일기는 자신의 옳고 그름을 차분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이자 여유이기도 하지요. 일기를 남
잠시 앉아 허리를 펴거나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던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낸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섰다.준공식 날,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왔다.오색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었다.동네가 훤해졌다고 했다.마을 사람들은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다.들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들도 음매 음매 목을 놓았다.
여기서 30년 살았으니이제 여기가 고향이제!하던 김씨도고향 찾아 떠났다집 팔고 논 팔고광 속의 종자씨까지 모조리훑어왔다던이씨도홀린 듯 훌훌 나섰다다 떠나버려졸지에 유령의 城이 된 도시-중략-회한이 번지는회색 지붕 위엔달마저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 우리에게 추석은 커다랗고 둥근달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그런 연유로
꽃이예쁘지 않는 일은 없다.열매가소중하지 않는 일도 없다.하나의 열매를 위하여열 개의 꽃잎이 힘을 모으고스무 개의 잎사귀들은응원을 보내고그런 다음에야가을은우리 눈에 보이면서여물어 간다.가을이몸조심 하는 것은열매 때문이다소중한 씨앗을 품었기 때문이다. 결실의 가을은 어디를 보나 풍성하기만 하네요. 뙤약볕 폭풍우 다 물리치
엄마 아빠 싸우는 동안내가 할 수 있는 일은고작 신발 정리신발 앞코 집 밖으로 향한 걸 찾아집 안쪽으로 돌려놓았다 평소에 사이좋고 우리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시던 엄마 아빠. 무엇을 잘못해 서로 목소리를 높일 땐 아이들은 참 난감해하지요. 엄마 편도 아빠 편도 들 수 없는 처지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멀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내가 제일 크니 형님이다.”수박이 과일들에게 말했습니다.“배꼽도 안 떨어진 게!”참외가 웃었습니다.“예끼!”얼굴에 주름진 대추가 나무랐습니다.손님이 들어왔습니다.“대추가 참 다네요.”대추도 손님에게는 꼼짝 못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장점을 내세워 나보다 좀 덜 하다 싶은 사람에
장식장 위에호박 한 덩이졸다 깨다텔레비전만 봅니다빈둥빈둥생각 없이텔레비전만 따라울고 웃는 사이속이물컹, 썩었습니다 공부벌레를 말할 때 영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세계 최고의 명문대인 미국 하버드대학 법과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의 힘든 삶과 노력을 보여준 과정들인데, 극 중에 정곡을 찌르
관악산이 우리 집 창문에성큼 다가섰다팔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햇빛이 눈부시다하늘이 높고 새파랗다콩콩 뛰고 싶고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다만나는 사람마다날씨 좋지날씨 좋다쌩글쌩글싱글싱글웃는 얼굴이다밝은 얼굴이다날씨도 웃는 날이다 우리 속담에 ‘변덕이 죽 끓듯 하다’라는 말이 있지요. 흔히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탓할 때 곧잘 쓰이기도 하지만, 기복(起伏)이 심한 사
삼촌이 돌아가실 적에나는 엉엉 울었다누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어른들이울길래 따라 울었다그러나 숟갈을 놓을 적에일곱 개를 놓다가 여섯 개를 놓으니가슴 속에서눈물이 왈칵 나왔다 어른에게 없는 아이들의 담백함. 모름지기 이 시의 미덕이란 깔끔하게 체화된 담백함이 상황묘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잔칫집처럼,
내 품이간장 종지에 불과한데항아리에 담을 만큼의 축복이 생긴들무엇으로 빨아들일까넘치면 허공에라도 담아보자 싶어종지에 추수한 복을 붓기시작했다붓고 또 붓다 보니넘쳐흐르다가깊고 넓은 가상 육체를 만든 양이미 노쇠한 그릇인데도상황에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생략- 삶이 때때로 신축성 있는 상황그릇이 되면 얼마나 살맛날까. 스스로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땡볕에 바랭이 풀과 씨름합니다. 깨끗이 제거되었을 거라고 땅을 파보면 바늘보다 작고 여린, 앞뒤 없는 마디가 숨죽이고 엎드렸다가 물기를 모아 움을 틔우는 것이 바랭이입니다. 여백만 있으면 왕거미 손처럼 참으로 왕성하게...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거기 진흙과 욋가지로 작은 오두막을 짓고아홉 고랑 콩밭 일구며 꿀벌통 하나 두고벌들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거기서 천천히 내려오는 평화를 누리리라안개 아련히 피어나는 아침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까지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별빛, 한낮엔 보랏빛 꽃들의 향연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생략-
견딜 때까지 견디게나.최후의 악이 부드럽게 녹아인격이 될 때까지.고통?견디게나.편안한 시간이란 쉬 오지 않는 법.상처가 깊으면 어때.깊을수록 정신은 빳빳한 법.생각 끝의 끝에서라도견디게나.그 어떤 비난이 떼를 지어 할퀸다 할지라도벼랑 끝에 선 채로 최후를 맞을지라도.-생략- 이 시에서의 ‘지조’란 부녀자 보다 정치가,
가뭄 들어사과 씨알 잘다고할머니 밤낮 걱정하던그 소리 들었나 보다비님 대신과수원에서내내 놀았던 해님은미안해서달콤한 꿀사과 속에꼭 꼭 넣어두었다. 넘쳐도 탈, 너무 적어도 탈이지요. 올여름 길게 이어진 한증막 같은 찜통더위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 하지요. 수확을 앞둔 작물은 불에 그슬린 듯 바싹바싹 타들어 갔고요. 말
할머니 생신날축하 노래 부르래요갑자기 내 심장이 쿵쿵쿵쿵사촌 동생은유치원에서 배운 노래겁도 없이 잘하는데어휴 모르겠다,쿵쿵쿵쿵 심장박자 무시하고무조건 크게 크게짝짝짝짝온 집안 박수소리에심장박자 잠잠. 한때 ‘음치 가수왕’이라는 티브이 프로가 있었지요. 노래 가사 틀리는 것쯤은 말할 나위도 없고, 발성 조절을 제멋대로 한
난폐타이어데굴데굴 구르고 굴러서종점까지 왔지.끝이라 생각했는데……알록달록 페인트 단장하고꼼짝없이 자리 잡고 누워길가의 흙을 품고분꽃 가득 보듬고꽃을 키우는 엄마 되었지도시를 지키는 아빠 되었지 필자가 중학생일 때 들은 얘기니까 한 오십 년은 되었네요. 예지의 눈을 가진 어느 환경학자가 말하길 머
송이 따는 아저씨들도송이 구경 못 했다는데올해도 봉화 송이 축제는열린다.진짜 봉화 송이100% 봉화 송이향 좋은 봉화 송이현수막마다봉화 송이봉화 송이그 사이에현수막 하나“맛 좋고 질 좋은중국산 송이 팔아요!”바람에 펄럭인다. 지자체가 시행된 이래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그 지역 특색을 내세운 축제라 아니
초가집 잃은 박을밭둑에 심는다고구려 벽화처럼뻗은 박넝쿨에한점 녹음 물들지 않고하얀 박꽃이 핀다박이 굵어 갈수록차돌처럼 여물고배꼽을 내밀고 낮잠 잔다플라스틱 그릇에 밀려쓸모가 줄어지나봄이 오면 박을 심는다 꽃 중에 흰 꽃을 대어 보라 하면 박꽃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박꽃은 유난히도 희게 보이는 탓에 청순하다고 말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