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11.감입곡류하천 대곡천과 반구대(상)

▲ 대곡천 반구대와 인근을 찍은 항공사진.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은 전형적인 감입곡류하천이다.

깊은 산 사이 휘감아 흐르는 감입곡류하천
삼척 오십천·울진 불영천·양양 남대천등
동해쪽으로 흘러내리는 하천서 흔히 보여
반구대-청령포 강 폭도 같고 역사성도 유사
단종의 흔적 남아있는 청령포 북쪽 벼랑처럼
반구대 북쪽 벼랑엔 유배됐던 정몽주의 흔적

곡류하천(曲流河川)이란 좌우로 구불구불하게 진행하는 하천을 말한다. 뱀의 움직임과 비슷해서 ‘사행천(蛇行川)’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미앤더(meander)라고 표현한다. 유럽의 에게 해(海)로 들어가는 터키의 ‘Meander(미앤더)’라는 강이 심하게 곡류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곡류하천은 크게 충적층의 범람원 위에 자유자재로 제멋대로 진행하는 ‘자유곡류하천’과 산간지역에서 구불구불하게 나아가는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으로 구분된다. ‘감입(嵌入)’이란, 사전적인 뜻풀이로 하면 ‘장식 따위를 새기거나 박아 넣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감(嵌)’자(字)는 ‘산깊을 감’을 쓴다. 다시 말하면 깊은 산들 사이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흘러가는 하천을 말한다.

▲ 울산 대곡천 반구대의 거북이 머리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반고서원유허비. 이 비각에는 포은대영모비, 포은대실록, 반고서원 유허비실기 등 3개의 비석이 있다.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은 전형적인 감입곡류하천이다. 감입곡류하천은 지반의 융기(어떤 지역의 땅덩어리가 주변 보다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일)나 침식기준면(지형의 평탄화작용이 진행될 때 침식작용이 일어나는 최저의 하한)의 저하 등으로 인해 하천이 기반암(基盤岩, 가장 오랜 기간 퇴적된 퇴적층 밑의 화성암이나 변성암)을 파고 들어감으로써 형성된다. 삼척의 오십천과 가곡천, 울진의 불영천과 왕피천, 양양의 남대천 등 동해 사면(斜面)을 흘러내리는 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곡천(大谷川)도 이 중의 하나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감입곡류하천은 골짜기가 파이는 과정에서 물굽이가 점점 커지면서 성장(生育)하게 된다.

▲ 영월의 청령포는 대곡천 반구대와 흡사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감입곡류라는 동일성뿐만 아니라 역사성이나 강의 폭, 주변 환경 등이 똑같다.

구하도(舊河道)는 과거에는 하천이었으나,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고 하천의 흔적만 남아 있는 지형(old river channel)을 말한다. 산지 안을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흘러내렸던 감입곡류하천에 물이 말라 육지화된 것이다. 구하도에서는 예전에 물이 흘렀음을 보여주는 둥글둥글한 조약돌이나 자갈을 발견할 수 있고, 강바닥에는 하천 퇴적물이 남아 있다.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의 청령포 맞은편에는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하도가 있다. 구글지도로 보면 구하도의 색깔과 지형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 청령포 북쪽 벼랑. 이곳에는 한양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노산대(魯山臺)가 있어 단종의 슬픔을 서강(西江)에 투영시키고 있다.

울산 대곡천에 있는 반구대과 영월의 청령포는 흡사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감입곡류라는 동일성뿐만 아니라 역사성이나 강의 폭, 주변 환경 등이 똑같다.

울산 대곡천 반구대의 거북이 머리 부분에는 반고서원유허비(盤皐書院遺墟碑·울산시유형문화재 제13호)가 있는데, 이 비각에는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1890), 반고서원 유허비실기(1901) 등 세 개의 비석이 있다. 영월의 청령포에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및 단종어소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단묘재본부시유지는 영조 39년(1763) 세워졌는데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 생활을 하던 어소(御所)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 대곡천 반구대 북쪽 벼랑. 절벽에는 반구대 학(鶴) 그림과 포은대(圃隱臺) 글자 등이 새겨져 있다.

또 반구대 북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는데, 이 곳은 대곡천의 거센 물살이 암벽에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절벽에는 반구대 학(鶴) 그림과 포은대(圃隱臺) 글자 등이 새겨져 있으며, 유유히 흐르는 대곡천에는 사시사철 반구대 그림자가 투영되고 있다. 비슷하게도 청령포 북쪽 벼랑에는 한양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노산대(魯山臺)가 있어 단종의 슬픔을 서강(西江)에 투영시키고 있다. 단종은 해질 무렵이면 이 노산대에 올라 한양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가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에 유배왔을 때 반구대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면서 ‘중양절감회(重陽節感懷)’라는 시를 썼던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대곡천은 감입곡류하천으로서 많은 유적과 명승을 만들어냈다. 대곡댐 일대의 백련구곡과 반계구곡, 석각구곡과 같은 구곡(九曲) 문화를 창출해냈고, 물길이 굽이치는 요소요소에 유서깊은 정자와 사찰을 일으켜 세웠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공달용 학예연구관은 “울산의 대표적인 하천지형으로 꼽으라면 주저 없이 ‘대곡천 곡류하천지형’을 꼽을 것이다. ‘대곡천 곡류하천지형’은 울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하천지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대곡천은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빚어낸 울산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찬란한 역사의 금자탑이다. 또 더 나아가 신화와 전설과 스토리를 창출하는 울산 문화예술의 보고다.

이재명 논설위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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