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까마득한 근 2500년 전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따름이다”라 했고, 증자는 공자의 애제자 안회를 칭찬하면서 “그는 유능하면서 무능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많이 알면서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며~”라고 했다.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물으라는 엄중한 가르침이다.나는 지금까지 사십 년 넘게 선생으로 살아오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수법이 문답법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듣기 좋은 말 하나를 고르라면 서슴없이 ‘감사하다’나 ‘고맙다’라는 말을 들고 싶다.인간은 너무나 나약해 혼자 살아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찍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란 뜻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말과 같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연에서부터 부모형제,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그렇고, 물 한 방울이 그렇고, 숨 쉴 수
대학에서 말하기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보여 주는 영화 한 편이 있었다. 2010년에 개봉한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란 영화다. 2011년 여러 영화상을 휩쓸었으며 7개의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영화로 연설 때마다 말을 더듬는 영국 왕 조지 6세의 언어치료 과정을 담은 내용이다.연설은 한 사람이 대중들에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고 감동을 주고 설득하는 화법이다. 따라서 넓은 공간과 불특정다수에게 하는 말하기란 특수성을 가진다. 연설은 웅변술과 수사학과 함께 기원전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의 대표적인 말하기의 하나였다. 세계
우리는 평생 수없이 많은 잘못을 하면서 살아간다. 또 그때마다 사과하고 후회하고 상대로부터 용서받으며 더불어 살아간다.사과 말하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자기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바람으로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통해 피해 본 상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보상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적 화법이다. 그리고 사과(謝過) 말하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게 되며 또 자신의 체면과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억나는 일들이 수없이 많지만 인사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인사를 나누지 않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그 반대로 모범적으로 인사를 잘하는 교수다.인사를 나누지 않는 사람은 같은 단과대학에 근무했던 사람이었는데 나와 함께 학장 선거에 출마한 뒤로 나와 인사 나누지 않는 사이가 돼 버린 교수다. 그래도 나는 이전처럼 그를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끝내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그 일을 생각하면 혹 내 잘못인가 싶기도 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또 한 교수는
우리 인간은 평생 동안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수용)도 하고 버리기(거절)도 하면서 살아간다. 즉, 순간 순간 취사선택의 연속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선택과 버림이 가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만큼 중요한 경우도 있다.얼마 전 일이다. 나는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어떤 모임에 가입 권유를 받았다. 나를 위한 제안으로 추천까지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더구나 추천하신 분은
갑진년 용의 해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나고 있다.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와 건강을 기원하는 바람이 줄을 잇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누가 나에게 복을 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불가에서는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보다 복을 많이 지으라는 작복(作福)이란 말을 자주 쓴다. 자기 복은 자기가 지은 만큼 받는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 교리인 연기이고 인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을 짓기 위해서는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란 말과 같다.업(業)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있다. 몸으로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어찌 한 둘이겠는가마는 그 중 후회되는 일 하나를 들라면 내 자녀가 한창 자랄 때 아버지로서 칭찬하는 말을 더 많이 못했던 것이다.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처럼, 경상도의 무뚝뚝한 여느 남자들처럼 사랑을 가슴으로 안고만 있었을 뿐 칭찬말을 하는 데 인색했다. 내 욕심이 앞서 칭찬보다 꾸짖음이 더 많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자녀들을 닦달했었다. 때론 칭찬할 일이 있었을 때에도 그냥 침묵했거나 지나가는 말 한 마디만 무심코 던졌을 뿐이었다. 나의 삶에 눈이 어두워 좀더 많이 안아 주지 못했고, 더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역사이래 지금까지 예수, 붓타, 공자 등 수많은 종교 선지자를 비롯해 선지식인 그리고 학자들까지 이 말하기 가르침에 대해 한 마디씩 해 왔다. 그것은 말하기가 인간의 삶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어렵다는 뜻도 된다.그 수많은 가르침들의 대전제는 한 마디로 말을 보면 말하는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과 말이 사람의 행과 불행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말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운동을 하고
태초에 조물주는 우리 인류에게 말을 주었다. 그래서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에서 모든 다른 동물을 지배하면서 이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이 말로써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꽃 피우며 살아오고 있다. 한편으로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학 문명을 발달시킨 것도 이 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또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말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