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그대를 향하여 툭 던진 말 한마디화살 되어 날아간다 후끈한 혀를 타고소문이 자라는 오후 햇살이 축축하다 혹여 날 잊은 것은 아닐까, 가까이 있어도 먼 그대를 향해 혀가 후끈 달도록 재빠르게 전한 말. 하지만 그대는 생각에 갇혀 내 마음을 모르는 듯 던진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말, 보다 못
당신의 기억 한 잎 울컥 흘러내려요한평생 쓰고 남은 연지통 같은 꽃껍질어머니 거지반 녹은 뼛골마다 붉게 필 제주에만 자생하는 섬 상사화의 붉노란 빛. 손때 묻은 연지 통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를 떠올린다.어머니라는 단어만큼 아련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색다른 음식이나 사물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머니, 내 어머니. 못 다 쓰고 남기고 간 연지 앞에
더도 덜도 아닌 아홉 살 눈부처다삼단 같은 머리칼 알미늄 솥 바꾸던 날덤으로 덤으로 받은 어머니 브로치다 어릴 적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라 무쇠솥 대신 알루미늄솥으로 바꾸었다.솥과 함께 자그마한 브로치를 덤으로 받았다.세월이 흘러 어머니를 산에 모시던 날, 길섶에 핀 꿀풀에서 그 옛날 어머니의 브로치를 보았다. 어머니는
백일만 사귈까보다 더는 잡지 않는다니날마다 꽃불 밝혀 깨소금 볶는 통에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간지럼만 붉어라 자미화(紫薇花) 백일홍은 개화기가 길어서 목 백일홍, 간지럼 나무라고도 부른다. 알록달록 윤기나는 이 나무는 7월에 발화해 그 선분홍빛 자태를 선보이며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한다.그 유혹에 눈길 빼앗
어제나 오늘이나 똑 같은 지리한 길그럴까봐 굽이굽이 매운 눈물 넣었구나눈물도 양념이라고 사는 맛을 알겠다 인생길이 별반 다르지 않다.더 하고 덜 할 뿐이지. 가는 길이 지루할까 굽이굽이 넘어가라 했던가. 구절양장 꼬불꼬불 외로 돌고 바로 돌아 끊일락 말락 끝이 어딘지 모른다.가다가 돌아서면 그 또한 녹록치 않다. 혹독함
긴 다리 긴 목이며 눈매는 매서운데하얀 옷고름에 묻어난 그리움이절벽 끝 구름 속으로 한 발 제겨 박찬다. 두루밋과에 속하는 학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 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서리가 내릴 무렵 우리나라로 날아드는 철새다. 채우면 더 채우려는 사람과 달리 높은 자리를 비켜 나직한 숲에 마른 갈대나 풀로 둥지를 튼다. 머문
집게 집도 부럽다던 아내 소원 미뤘지만지천명 지난 뒤에 전세나마 옮겨 좋다성금에 보태보려고 쇠끝 줍는 친구 곁이. 세상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따뜻한 가족, 이웃, 친구 모두가 소중하다.요즘은 하늘보다 높은 게 부동산이라는데 웬만큼 저축해서 소형 아파트 하나 장만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집 없는 서러움만큼 큰 게 없다.
싸우다가 지친 날은 더 힘내자고 벼른다말 바늘에 찔린 선홍빛도 퇴색되자웃지 마 하, 튕겨내다 맞대어 깁는 실 눈빛 부부의 인연이란 참 묘하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하나 되어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자 언약한다.하지만 이는 꿈 속의 화려한 궁전 같은 말에 불과하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살아도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파르르 숨 들이키면 하늘 닮은 꽃잎들그립단 말 뱉어 놓고 눈물 확! 쏟습니다그 환한 적막 따스해 사랑이라 씁니다 ‘하늘’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하늘매발톱이 됐다.6월이면 북부의 어느 깊은 산, 양지에서 꽃피운다. 하늘매발톱이 피는 달은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어느 골짜기나 들녘 물가에서 포탄에 맞아 홀로 쓰
베란다 방충망에 앉아 떠는 파리 한 마리잘 골라 앉아야지 천리마 잔등에나남북을 가로지르는 비행궤적이 부시다 ‘방충망’이 꽃자리인 줄 잘 못 알고 앉아 있다. 그런 파리를 보고 ‘너 잘못 앉았다, 한눈팔지 말아라’ 나무란다.천리마 등에 앉으면 천 리를 갈 것을. 파리를 보고 그 모양으로 떨고 있느냐고 또 나무란다.이윽고
지우면 지울수록 돋을무늬가 되는 사람사람 참 앙상했으나 꽃받침이 앙다문 꽃그 꽃대 기어 올라가 부처처럼 웃는 허공 멀리 있어도 향기가 느껴지는 이, 고단한 곁을 기둥처럼 받쳐주는 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행운이다.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가 없다면. 그렇다고 슬퍼말자. 내 눈에 어설펐던 사람이 어느
내 고향 물빛 하늘 묵필로 듬뿍 찍어울 엄니 가슴 같은 산마루를 그려보면화선지 한 폭 가득히 번져가는 그리움 떠나온 고향, 두고 온 어머니. 언제나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맑은 바람, 파란 하늘이 눈에 선하다. ‘울 엄니 가슴 같은 산마루’에서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위대한 그 이름, 어머니의 품 속이 느껴진다.사립문을 들어서며 “엄니”하고 달려 가 색종이로 곱
퍼붓는 장대비에 자욱이 깔린 안개한치 앞도 볼 수 없다 길 위에서 우왕좌왕날개를 접지 못한 새 엄마 품속 찾고 있다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래도 가고자 하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삶에 있어 장대비만 쏟아질까. 바람과 안개, 천둥과 번개마저 부추긴다. 사방이 아득해 방향찾아 헤맬 때가 매우 많다. 막다른 길에서 지푸
재 넘어 양지마을 김 씨 집 돌담 곁에작년에 내 마음을 가져간 여인이자줏빛 자궁 문 열고 하혈 펑펑하고 있다지난 봄 ‘양지마을 돌담 곁에’ 핀 목련은 햇살보다 더 눈부셨다. 잎보다 먼저 피는 이 꽃은 1억4000만 년 전 백악기 화석에서 발견될 만큼 뿌리가 깊다.시인은 이 꽃을 ‘작년에 마음을 가져간 여인’이라 했다. 꽃봉오리가 점점 부풀어 팡팡 터지는 장
봄오는 지하역에 훈김을 싣고 온다극광의 부신 햇살 플랫폼에 바장이고비취빛 투명하늘이 대숲 잠을 깨운다 봄은 양지 음지 가리지 않고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빛 한 가닥 들어오지 않는 지하 역도 말없이 훈훈하게 데워준다.‘극광의 부신 햇살 플랫폼에 바장이’는 시각적 표현 속에서 바삐 오르내리는 도시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아무 기척도 없이 다녀간 봄밤입니다모처럼 길을 나선 서귀포 봄밤입니다백목련 손수건 몇 장 툭, 놓는 봄밤입니다 봄비가 발뒤꿈치 들고 몰래 다녀간 서귀포 봄밤, 꽃들에서 향기가 어우러져 싸늘하고 빙초산 같은 밤의 정취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다.화자는 하얀 접시를 닦아 엎어놓은 듯 다투어 핀 꽃이 툭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천리향 꺾어 들고 나비수국 깨운 바람엄마 품 우리 아기 나비잠도 깨우겠네긴 고랑 텃밭에 들어 나비 떼나 깨우렴높고 넓은 하늘 난간을 건너온 봄바람이 두 팔을 위로 올려 새근새근 나비잠을 자는 아기를 깨울까 걱정하는 화자의 마음이 설핏 보인다.나비 ‘떼’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경을 은유한다. 나비의 날개가 여든여덟의 형태로 바뀐다. 어느 춤꾼이 그 춤사위에
봄밤 - 박영학법대 앞 벚꽃에 취해 정신을 깜박 놓다문득 꿈길 따라 택배 된 그런 밤은어깨에 남은 꽃잎을 택시비로 떼어줬다. 식물은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다. 주어진 몫을 움켜지지 않고 나누는 마음을 가졌다. 머물 때를 알고 떠날 때를 안다.작품 속 꽃나무도 꼭 그렇다. 사사로운 욕심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순수하다.
갈증을 다독이며발라낸입덧이다 무딘 코 간질이며흔들리는눈빛 마냥어둠을 벗어던지며멀미하는외등 마냥 우리 삶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봄의 발화도 그와 같다. 고통 끝에 비로소 화려함을 드러낸다.‘무딘 코 간질이며 흔들리는 눈빛 마냥’ 맺혀있던 꽃봉오리가 갓 피기 시작하면 어느 꽃 할 것 없이 물기 머금은 봄바람
정제된 감성의 단시조를 매주 한편씩 소개합니다. 울산을 비롯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해설과 함께 싣겠습니다. 일상을 접고 잠시 숨을 고르며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까마득한 돌 속에서 비명소리 달려온다돌도끼 날을 벼린 선사의 갈기를 잡고장엄한 生死의 초침이 내 이마에 꽂힌다 -한분옥바위 절벽에 새긴 그림을 바라본 시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