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중리(中里)는 석산과 레미콘, 아스콘 공장이 대거 들어서고 먼지와 소음, 대형차량의 왕래에 따른 사고위험 등으로 몸살을 앓고부터 마을이 점차 왜소해져 가고 있다. 또 도로변을 따라 가든과 찻집, 여관 등이 들어서면서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중리에는 골짜기마다 석산이나 레미콘공장, 아스콘공장이 들어서 있다. 현재 가동중인 곳만 경남레미콘, 용호레미콘, 대영아스콘, 정원산업, 용호산업, 현대광업, 함월석재 등 레미콘 공장 2곳, 아스콘 공장 1곳, 석산 5곳 등 석재와 관련된 기업이 8곳이나 된다.

 석재와 관련된 기업이 밀집되면서 생태계 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석산이 밀집된 정지불에는 흔한 가재며 개구리, 민물고기 등이 자취를 감추었다. 연중 쉼없이 발생하는 돌가루가 주변 나무며 농작물, 하천을 모두 덮어 골짜기가 먼지구덩이로 변했다.

 농작물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벼 잎사귀가 나오는 시기와 꽃이 피는 때의 먼지는 수확량에 영향을 미친다. 다 핀 벼 잎사귀에 앉은 먼지는 성장을 저해한다. 벼 뿐만 아니라 과수도 제대로 자라지 않고 수확도 시원찮다. 골짜기를 따라 늘어서 있던 감나무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시들어 버렸다.

 생활불편도 심각한 수준이다. 먼지로 인한 불편은 이제 두번째 만원으로 밀려났다. 대형 덤프트럭의 소음과 사고위험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성근 중리마을 이장은 "석산 먼지에다 하루 수백대도 넘는 대형 덤프트럭과 레미콘차량이 질주하면서 내는 먼지로 빨래를 바깥에 널지 못하고 장독을 열어 놓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량소음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교통체증이 생기기전에 하루 물량을 해치우려는 대형 차량들이 새벽 3시만 되면 운행을 시작해 시속 80㎞이상 과속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외부적인 환경이 악화되면 내부결속은 강해진다. 주민들의 단합은 어느 마을 못지 않다. 석산 등의 피해에 대한 항의나 주민들 회의에는 빠지는 이가 거의 없다. 외지인들이 들어오지 않고 토착민들끼리만 살아 이웃간의 정도 남다르다.

 중리마을 정지불 정상 인근에 1천400여명의 농지가 자리하고 있다. 70년대 이전에는 8가구 살았으나 교육여건과 석산개발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지금은 1가구만이 농장과 벼농사를 짓고 있을 뿐이다.

 지지(知止)는 조선 숙종때 이현상이 숙종의 민비 폐서인 사건으로 벼슬을 내놓고 낙향, 허고개에서 배가 고파 쓰러졌다가 이곳에 머무르게 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지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짓고 있는 토착민들과 식당 등을 운영하는 외지인들로 구성돼 있다. 최근들어 중리마을에서 지장고개에 이르는 골짜기와 지장고개 정상에 들어서기 시작한 가든과 찻집, 여관이 10여곳에 이른다. 하지만 본 마을 다소 거리를 두고 형성돼 있어 토착민들과는 별다른 마찰은 없다.

 국수봉과 연화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어 울산시가지와는 기온이 4~5도씩 차이가 난다. 올 2월19일 울산에 비올때 이곳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데다 분지로 겨울에 춥다보니 집들이 모두 자그만 하다. 이웃 망성리나 은편리 집들보다 30% 이상 작다. 좁은 땅덩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지혜인 셈이다.

 지지마을은 10년전만해도 행정구역은 범서면, 학군은 두동면으로 소속돼 자녀들이 두동초등과 두광중학교에 다녔다. 박경삼 지지마을 이장은 "이 마을 출신들은 범서읍 사람들과는 학교 동문이 달라 친구들이 별로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몇년전만해도 지지마을 주민들도 가든을 시작해 적지않은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식당이 늘어나고 교통편이 불편해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5~6곳이 문을 닫고 본업으로 돌아왔다.

 진·출입로가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아 전원주택은 한곳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도 한때 부동산바람이 불기도 했다. 90년대 초반 성신그룹에서 대학을 세우기 위해 국수봉 산자락을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한대 평당 30만원까지 거래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13만원선에도 못미치고 있다. 성신그룹에서 사들인 땅은 대학설립이 무산된 뒤 다시 매각했다.

 계단식 논들이 상층부터 점차 산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노령화로 노동인구가 줄고 노력에 비해 수입이 시원찮아 지면서 산자락에 가까운 농지들이 잡초밭으로 묵혀지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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