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통해 꿈을 실현시킨 두바이
끊임없는 창조로 전세계 이목 집중
울산도 수소메카로 혁신·창조 기대

▲ 성인수 울산도시공사 사장

대를 이어 도시 발전과 운영을 책임진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은 셰이크 라시드 빈 사에드 알 막툼의 네 아들 중 셋째로 1949년 태어났다.

영국사관학교로 유학해서 학업을 마친 뒤 두바이 경찰청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 초대 국방장관을 거쳐 형의 뒤를 이어 2006년 두바이 통치자가 됐다.

그는 두바이가 세계 자본가를 물색하기 보다 자본가들이 두바이를 필요하게 만든 지도자로 꼽힌다. 그것은 ‘도시 상상력’의 내포(內包)와 외연(外緣) 모두를 혁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막툼 가문이 두바이에 뿌리 내린 건 188년 전이다. 셰이크 라시드(현 국왕의 아버지)는 진주 양식이 번창하자 1958년부터 원대한 물류거점도시를 구상했다.

1961년 두바이 자치제를 실시했다. 1966년 동쪽 120㎞ 페르시아 만에서 유전이 발견되자, 셰이크 라시드는 ‘언젠가 석유는 고갈 된다. 석유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두바이를 만들자’면서 혁신을 주도했다. 1971년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이 탄생하고, 1960년대 말 착공한 라시드 항구를 1972년 완공했다.

1985년 중동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었다. 에미리트항공을 설립하여 세계 축구클럽들과 스폰서계약을 체결했다.

스튜디어스 선발 기준은 고졸 이상에, 손 뻗어 닿는 높이(212㎝)를 포함시켰다. 인구 96%까지 외국인과 사치, 노동자, 개발자, 건축가, 열망, 언어 악센트까지 뉴욕보다 다채로운 두바이로 변화해갔다. 163층 부르즈 칼리파(2010년 개장)와 인공섬 더 월드, 팜 아일랜드(2001년 착공, 데이라, 제벨 알리, 주메이라)로 중동과 세계의 중추도시가 됐다.

급유 장소 두바이 공항에서 인질협상가 셰이크 모하메드는 PLO, 적군파, 서독 급진파를 상대하며 인질도 살려냈다. 밤 문화가 그리운 사우디인, 이란인과 러시아 기업가 유치로 두바이의 진열대는 사재기 대상이 됐다. 세계인이 세금 없는 봉급에 몰려들었다. 추억의 식민지에 영국인은 면세에 매료됐다. 2002년 법이 바뀌어 외국인이 부동산과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되자 레바논인의, 인도 신흥부자의, 러시아 부호의, 마이애미에 있던 남미 부호의 돈이 모여 들었다.

1996년 3월 ‘21세기 두바이 경제개발 계획’ 이후 세계인에게 경제적 자유와 부를 선사한 장남 막툼 빈 라시드는 동생에게 국왕자리를 물려주었다.

국왕이 된 셰이크 모하메드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꿈꾼 것 중 아직 10분의 1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역사에 기록되기 보다 아예 역사를 만들었다. 남의 뒤를 따를 것인가 창의적으로 주도할 것인가. 우리는 선각자의 길을 가려 한다”고 했다. 미디어시티, 지식마을, 두바이 랜드, 스키 두바이 등 끊임없이 혁신 중이다.

블룸버그2021 혁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2위, 올해 1위였다. 9년 동안 1위를 7번 차지했다. 장치산업도시 울산에서 수소경제도시로의 혁신과 변신이 효과적이어야 한다. 도시 울산은 수소도시의 선각자일까. 우정혁신도시는 미래 동력에 순응하나. 수도권처럼 부동산 투기에 매달리지 않겠지. 부동산 투기는 중단돼야 한다. 두바이에서의 토지를 통한 상상력의 극대화와 서울 수도권에서의 부동산 가치의 극대화를 보고 있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수소도시로의 혁신과 창조를 기대한다. 성인수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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