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 요소의 핵심은 생명권
생명의 가치는 계수화할 수 없어
존엄과 가치에 대한 근본인식 문제

▲ 전충렬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전 울산부시장·행정학 박사

근자에 모 대학 법전원 교수이자 정당의 혁신위원장이 노인 선거권과 관련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 논란은 노인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권도 그에 따라 제한해야 하지 않느냐는 아이의 말이 합리적이라고 한 데서 시작됐다. 아이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법학자의 지성이 그 정도라니 충격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그 사단(事端)을 ‘노인’ 예우와 관련된 문제로만 본다면 우리 모두 헌법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인간 존엄과 가치에 관한 근본 인식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나 생명은 계측의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여명(餘命)에 비례해 투표권을 주자는 사고나 논의는 일견 그럴 듯 해보이지만 소설 같은 허구적 영역에서조차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실 누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는가? 생명은 그 끝이 언제일지 우리 일반인은 아무도 모른다. 젊은이가 늙은이보다 오래 산다는 기본 명제는 인정하지만 실제 누가 먼저 죽을지 누가 아는가? 젊은 사람도 바로 내일 죽을 수 있고 팔십 노인이 20년을 더 살 수도 있다. 남은 목숨 기간을 모르면서 그 기간에 따른 권리 부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인간의 삶에 기적이 따로 없다.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일 뿐이다. 불가에서는 목숨의 실체가 있다거나 언제까지 살고자 하는 등의 집착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여 깨침을 위해 반드시 타파해야 할 상(相) 중의 하나라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제10조)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인간 가치의 불가침과 비계량성을 천명하고 있다. 이 존엄성 규정은 인간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사회의 모든 제도나 어떠한 존재 또는 가치보다 인간이 우선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여하한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인간을 사회의 수단으로 본다면 이는 바로 전체주의(全體主義)의 소산이다.

인간의 존엄성 요소 중 핵심은 생명권이다. 이 생명권은 절대적이며 계수화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그 숫자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존엄하다. 헌법수업 시간에 누군가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논리에 따라 다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소수가 희생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가 교수한테 혼이 난 적이 있다. 수만 명의 목숨이든 한 명의 목숨이든 그 가치는 같다고 했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결코 수량화할 수가 없다. 어린 생명이든 늙거나 병들어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이든 상대적 가치나 시간에 의해 재단될 수도 없다. 이것이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본 콘셉트인 것이다. 이 대소(大小)의 논리는 과업 즉 수단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일의 중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거나 공(公)을 위해 사(私)를 양보한다는 등의 의미로 선공후사(先公後私)나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로크(J. Loke) 등 원조 철학자들은 선거권을 하늘이 부여한 불가침의 권리 즉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고 했다. 우리 헌법(제24조)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하여 주권 있는 국민 모두가 가지는 기본권임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고 했다고 해서 법률로 선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법률을 통해 선거권의 행사를 구체화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18세 미만의 국민도 선거권은 있으나 그 행사 시기가 법률에 의해 미뤄져 있을 뿐이다.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다.

이번 노인 선거권 관련 논란은 그 본질이 결코 ‘노인’에 대한 폄하 문제가 아니다. 중대성 차원에서 볼 때 그 발언을 한 그 위원장 사진의 따귀를 ‘노인회 회장’이 때릴 정도의 수준을 훨씬 넘는다. 그 뿌리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인간 생명에 대한 기본인식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비록 헌법학자는 아니어도 법학 교수가 근본법인 헌법을 모르면 법학자라고 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근본 성찰까지는 못하더라도 헌법정신만큼은 사회의 지도층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

전충렬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전 울산부시장·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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