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최강자 韓
장기적 기술개발·인력양성에 박차
‘AI 강국 코리아’ 꿈 실현해야 할때

▲ 정은 울산대학교 신소재·반도체융합학부 명예교수

‘소버린 AI(Sovereign AI)’, 즉 ‘AI 주권’이라는 말이 연일 화두다. 이는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델부터 데이터, 연산 자원(인프라), 인재에 이르기까지 AI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운영하자는 국가적 전략이다. 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거대 빅테크 기업이 만든 AI에 종속될 경우, 우리의 데이터 주권이 흔들리고 경제와 안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우리는 이미 그 편리함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AI 서비스의 대부분은 해외 특정 기업의 기술과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중요한 데이터가 해외 서버에 저장되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가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국제 정세가 급변하거나 해당 기업의 정책이 바뀐다면, 하루아침에 AI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소버린 AI는 바로 이러한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언이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 법과 제도를 가장 잘 이해하는 AI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국가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AI 주권’이라는 집을 짓기 위한 가장 튼튼한 주춧돌은 무엇일까? 바로 반도체, 그중에서도 플래시메모리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며, 학습된 AI가 똑똑하게 추론하고 답을 내놓기 위해서도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읽고 처리해야 한다. 이때 데이터의 영구적인 ‘저장 창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낸드플래시 기반의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와 같은 저장 장치다.

과거에는 연산을 담당하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나 D램 같은 고성능 메모리만 주목받았지만, AI 시대에는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하는지가 AI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하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GPU)가 있어도, 식재료(데이터)가 보관된 창고(플래시메모리)가 부실하고 물건을 꺼내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맛있는 요리를 제때 내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의 저력이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최강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십 년간 쌓아온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대용량, 고성능, 저전력 플래시메모리 기술 개발을 주도하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AI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더 빠르고 용량이 큰 차세대 SSD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플래시메모리 기술이 소버린 AI 전략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전략 자산’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AI 모델이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후발주자일지라도, AI 구동의 핵심 하드웨어인 메모리 반도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소버린 AI의 성공은 단순히 특정 기술이나 부품 하나에 의존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의 플래시메모리 기술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 AI 모델,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등 전 분야에 걸친 균형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과감한 규제 혁신과 투자를 통해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고, 기업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 AI 주권은 정부의 구호나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A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산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AI 강국 코리아’의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의 반도체가 세상의 데이터를 담아왔듯, 이제는 우리의 AI가 세상의 미래를 담아낼 때다.

정은 울산대학교 신소재·반도체융합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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