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부고속철 차량선정 로비 의혹과 관련, 로비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난 96년 총선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구 여권에 선거자금으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억대의 뭉칫돈을 발견, 수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검찰은 경부 고속철 로비대상으로 알려진 황명수 전의원의 주변 계좌를 뒤지던중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관리해온 거액의 입출금 계좌를 포착, 지금까지 연결계좌를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안기부 계좌에서 96년 4·11 총선 당시 신한국당에 수백억대의 선거 자금이흘러들어간 사실을 파악했고 경부 고속철 로비 의혹 사건과는 별개로 구여권 의 불법선거 자금 동원 혐의가 수사의 도마에 오른 셈이다. 검찰은 지난해 5월부터 안기부가 이른바 "통치 자금"을 관리해온 모계좌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주력해 왔고 현재 통치자금의 규모와 사용처 등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의원의 관련 계좌를 추적하면서 검찰은 현재 안기부가 500억~900억원대의 자금을 조성, 당시 신한국당에 총선비용으로 제공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신한국당 의원 30여명이 4·11 총선 당시 안기부 선거자금을 제공받았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검찰은 그 명단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기부 선거 자금 제공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 등 고위 간부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법은 안기부 직원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 자금을 제공받은 구여권 정치인들의 사법처리 여부. 안기부가 관리해온 거액의 돈은 엄연히 국가 예산이고 이를 특정 정당에 제공한 것자체가 명백한 불법 행위인만큼 관련 정치인들도 당연히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안기부가 제공한 돈의 실체를 알고있었는지여부가 분명치 않고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98년 이전 정치자금은 사법처리가 사실상 어려운데다 공소시효(3년)도 이미 지난 상태라는 점등에 비춰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렵지 않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경부고속철 로비 의혹 사건에서 불거져 나온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는 안기부만의 불법행위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른바 베일에 가려져있던 통치자금의 실체가 이번 수사를 계기로 드러날 전망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한편 검찰은 수사의 본류였던 경부 고속철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마무리수순에 돌입했다. 고속철 로비과정에서 4억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 황 전의원 등 정치인 2명을 비롯한 구여권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지만 로비스트 최만석씨(60·수배)가해외로 도피한 상태여서 수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태. 로비자금을 제공한 사람은 없지만 황 전의원 등을 소환, 확보된 물증을 토대로 사법처리 수순을 밟으면서 사건은 일단 봉합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