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해바라기 그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잎은 없고 꽃만 크게 그린 그림이다. 꽃대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머리 모양으로 모여 있는 형태의(두상꽃차례라는) 해바라기 그림도 있지만, 유독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그림에 점점 빠져든다.해바라기는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이다. 어릴 적 외삼촌 집 텃밭에 심어진 노란 해바라기를 본 이후 해바라기는 동
둑길에서 뺨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며 울컥, 설움이 몰려왔다. 병실을 지키는 어머니는 들녘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을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억이 서린 곳에선 함께했던 순간이 그리워진다.삼 주 동안 병실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에서 하늘을 볼 수 있고,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작은 정원으로 갔다. 산 위
누군가의 말이 힘이 될때가 있다.오늘이 그렇다.폭염을 견디고 피어난 수련,하나의 꽃을 피우기까지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그 어려움도 모두 견뎌낸 이가수련이 아니냐고,그 수련 같은 딸이 곁에 있으니더는 걱정 말라는 것이다.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를 읽은 후 불현듯 포도주 대신 오미자 냉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유리 감옥 주홍빛 밀
백성들의 희생 막기 위해신라에 나라 바친 가야왕땅잃고 돌무덤에 묻혔어도백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요즘 정치인에게 필요한진정 국민을 위한 마음 아닐까봄산의 연두색이 물러나고 새로운 시간의 빛으로 바뀌는 계절, 금계국의 노랑은 알맞게 황홀하다.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에서 약간 벗어난 그저 평범한 골짜기, 보잘 것 없는 능선이 비좁은 계곡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는 곳에
푸성귀로 情빚 갚겠다는 생각은산짐승들로 헛된 망상이 돼버려남새밭에 걸려든 어린 고라니의필사적인 버둥거림을 보며공생위한 새 경영철학 생각해봐“꾸웨엑! 꾸웨엑!”그물로 설켜 놓은 문을 열고 밭으로 들어서자 괴상한 울음이 들렸다. 특이하게 들리는 미운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고라니였다. 사람 기척에 어린 고라니가 방향을 잃고 우거진 풀밭에서 우왕좌왕 고래고래 날
닭을 물어 죽일 뻔한고양이 알콩이의 사고가싱싱한 푸성귀로 돌아온 날정겨운 시골인심반갑고 따듯함 새삼 깨달아알콩이가 사고를 쳤다. 처음엔 또 어디서 비둘기를 잡은 것이려니 여겼다. 혀를 내두를 만한 알콩이의 사냥실력을 아는 까닭이다. 잠자리와 나비는 물론 새를 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날것도 쉽게 잡는 정도니 쥐나 뱀은 우리 집 주변엔 얼씬도 못한다. 언젠가
얼마 전 서울 딸집에 다녀왔다. 이십여 년을 살다가 떠나 온 지도 어언 또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옛 시조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도 현대엔 적용이 안 된다. 인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천마저도 옛 모습을 찾기가...
다방이 신기루같이 사라져버리듯7080청춘들도 ‘명퇴’란 이름으로직장을 떠나고 있다.내 젊음의 순례지 음악다방알딸딸하고 그리운 추억이여 안녕‘그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웠다. 약속시간 흘러갔어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싸늘하게 식은 찻잔에 슬픔처럼 어리는 고독….’ 나훈아가 부른 찻집의 고
백팩 메고 걸으면 세상이 보인다.그것을 짊어지면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멜빵이 어깨를 파고들 때마다뼛속까지 작가라고 담금질한다.안경을 착용하고 안경을 찾은 적이 있었다. 쓴웃음이 나왔지만 무엇을 오래 쓰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내 몸처럼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게는 백팩(backpack)도 그렇다. 나는 외출할 때 습관처럼 백팩을 메고 나선다.
그땅은 어느 문중 소유였다. 거기서 농지를 관리해 줄 사람을 찾던 중 아버지에게 연줄이 닿았다. 소도시 단층 양옥이 가진 것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부동산으로 빚 청산을 했다. 집 담보 대출금과 여분의 빚까지 갚고 나니 노쇠한 몸과 반평생 생계를 이어준 표고목만 남았다. 버섯 재배장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참나무 원목 옮길 곳도 알아봐야 했다. 아버지가 허물
순식간에 비워지는 기억으로 살아도엄마는 자식사랑을 부여잡고 버틴다그 기억만은 은행나무 노란 등불처럼선명하다고 믿는다엄마 부디 우리 걱정 마시고내일 아침 식사 많이 하셔야 돼요은행나무가 지상에 노란 등잔불을 내 걸었다. 길 위의 정이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 양초에 등잔불을 붙여 들고 간다.오늘 밤. 잠자리에 들어도 내 마음 등잔불이 꺼지지 않는다. 은행나무
절제·조화로 새로운 음악 개척한 드뷔시교향곡 ‘바다’에서 옛 고향·친구 떠올라음악이 무의식에 남은 과거를 재생시키듯시는 인간의 마음 속 순순함을 끌어올려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중엔 악인없어‘새벽안개 걷히자 아침 바다가 눈을 뜬다. 파도가 해안으로 몰려오자, 전날 밤에 출항한 배들이 포구로 돌아온다. 갈매기는 흰 등을 빛내며 흐른다. 바람이 불어가는 쪽 어
빗소리에 학교장시절 야영 떠올려억수같은 소나기에 불어난 계곡물로경황없던 날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뜨겁던 여름도 계절의 흐름에 가고또 그렇게 반복되며 세월은 흘러갈듯꼭하늘에서 사각사각 쌀가루를 뿌리는 듯한 빗소리에 잠을 깼다. 어둑새벽이다.빗소리를 사각거린다고 하고나니 뭔가 이상하다. 흔히 알고 있는 비의 종류를 한 번에 하늘에서 떨어뜨린다면 어떤 소리일까?
오늘 아침, 그 사납게 울어 젖히던 매미 소리가 많이 약해져 들린다. 때로는 폭군처럼, 때로는 점령군처럼 도심의 적막을 흔들어대던 기고만장한 소리가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그간 매미는 참으로 많은 욕을 먹으며 찜통같은 여름을 버텼다. 7월 염천에 폭염을 견디며 고래고래 사랑타령이나 하는 그의 고함소리는 정말 가관이었다. 주위의 소음이 심할수록, 수은주가 40
암수술차 서울행 기차를 타고 떠나신아버지를 배웅했던 학성공원 앞 육교육교의 철거와 함께 추억도 허물어져‘추억’이라는 단어는 ‘쌓이다’라는 서술어와 곧 잘 어울려 한 문장을 이룬다. 일련의 추억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이따금 의식 밖으로 강제 소환되어 시간의 알고리즘을 형성하며 우리의 감정선을 자극시킨다. 한편 이 ‘추억’이라는 단어는 ‘허물
일생을 농사꾼으로 고향땅 지켰던 아버지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가실 때조차당신의 자랑이던 경운기를 타고 논 한바퀴피와 땀 새겨진 들판 가슴가득 담으셨을듯아버지가 지난 추석 때 경운기에서 낙상했다. 병원 가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했던 아버지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119구급차와 앰블런스를 번갈아 타고 병원수술대에 올라 조각난 다리뼈를 의사
가슴 저리도록 기다린 봄은열병처럼 금세 왔다간 사라진다온 세상 형형색색이 물러간 자리진한 초록속에 장미가 오고 있다온통 붉고 더 시끄러운 장미대선겹겹 조화로운 마법의 장미였으면봄, 찰나의 이름이다. 부지불식간에 황토색 천지를 형광의 물결로 변모시킨다. 그 조화는 누구의 손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일까. 봄은 우리를 애태운다.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매서운 바람
노랑 하양 초록 분홍 빨강 물감을 뿌려놓은 듯 형형색색은 어디서 왔을까. 누가 불러 들판을 물들이고 마침내 세상을 점령해 가는지. 계절은 땅과 하늘의 아름다움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진게 틀림없다. 물과 물이 부딪혀 강물소리를 불러내고, 소리와 소리가 맞닿아 초록을 부르고, 초록과 초록이 꽃을 불러내고 새를 모으고 사람들을 한곳에 모은다. 불려나온 것들은 아름
둥글넓적한 가자미를 보면유년기 뛰놀던 공터가 떠오르고바다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않는어부 배씨의 투박한 情이 생각나마음의 모래톱에 쓸쓸함이 앉는다어떤 사물을 보면 장소를 연상시킨다. 특히 가자미가 그렇다. 그것의 쭉 째진 눈은 우측 끝에 함몰되다가 만 듯 간신히 두 개 붙여져 있지만 거의 얼굴이 없다. 안면을 모두 지운 대신 몸 전체가 둥글넓적하고 밋밋한 경사
오래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를 본래의 제목을 찾은 으로 다시 읽고 난 후, 비틀즈를 다시 들으며 망연한 젊음의 한 시기를 떠올리던 기억은 늘상 그렇듯 길을 잃고 그 동네로 돌아간다. 그 동네, 경상남도 울산시 신정2동, 이제는 없는 동네. 그러나 당시에는 없어질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그 시절의 흔하디흔한 동